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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존스 - 웨스트민스트 사역 2 (목회 2000) 2008/3/13 16:28
http://mylog.jesusfamily.kr/jesus100/485 
 

 

20세기 최고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5

 

웨스트민스트사역(1938-1968) (2)

 

 

3.로이드 존스가 영향을 미친 기관 및 단체

 

1)복음주의 도서관

로이드 존스의 사역은 웨스트 민스터 교회를 목양하는 것 이상의 폭넓은 사역이었다. 로이드 존스가 도움을 준 몇 가지의 단체와 기관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1943년 영국 런던에 세워진 복음주의 도서관이다. 복음주의 도서관이 생겨나게 된 배경은 1943년 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40년 전에 윌리암이라고 하는 한 청년이 17살 때 회심을 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월리암은 회심이후 자신의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기독교 고전에 대한 책을 소개 받았다. 월리암은 이러한 종류의 책을 통해서 너무나 큰 영적 도움을 받았다. 월리암이 읽고 도움을 받은 책들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 러더포드의 편지,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일기등이었다. 그래서 월리암은 이런 종류의 책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1920년대가 되자 개인도서관을 꾸밀정도로 책이 모여졌다. 1928년에는 책이 넘쳐서 큰집으로 이사를 해야할 정도가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주기 시작했다. 월리암은 모은 책들은 약20,000권 정도였다. 한 개인이 소장한 분량으로서는 상당한 분량이었다. 그러나 한 개인이 단순히 20,000만권 정도의 장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월리암이 모은 책의 종류가 모두 개혁신학, 언약신학, 청교도신학 그리고 부흥에 관련된 주제였다는 점이다. 모든 주제를 망라한 것으로서 20,000권의 책은 그렇게 큰 가치가 없지만 개혁과 부흥에 관한 책들만 한 평신도에 의해서 20,000만권정도가 모였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특히 개혁신학과 청교도 신학이 일반독자들의 관심에서 사라져버려 더 이상 이 분야의 책들을 쉽게 구할 수 없게되고, 이런 분야의 책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던 상황에서 월리암의 이러한 노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1930년대가 되자 사람들이 점점 이런 책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게되어 책을 빌려보지 않게 되자 월리암의 개인 도서관은 박물관처럼 되어 버렸다. 이러한 현실에 가슴아파하던 월리암이 평소 잘 들러던 서점 주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 하자 그 서점 주인이 로이드 존스를 만나보면 당신에게 좋은 길을 알려줄 것이라고 로이드 존스를 추천을 해 주게 되었다. 그래서 윌리암은 로이드 존스를 찾아가게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월리암에게 현재있는 월리암의 개인도서관이 시골지역에 있어서 사람들이 빌려보기 힘들기 때문에 런던으로 그 도서관을 옮겨올 것을 제안했다. 월리암은 로이드 존스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도서관을 영국 런던의 중심부로 옮기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월리암 도서관이라고도 불리는 복음주의 도서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복음주의 도서관이 있음으로 해서 더 이상 발간되지 않아, 구할 수도 살 수도 없는 중요한 개혁과 부흥에 대한 고전들을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새롭게 개혁신학과 청교도 신학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뭄에 단비와 같은 또는 사막에 오아시스와 같았다.

 

고대로부터 도서관은 사람들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지식의 보물창고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도서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개인이 필요에 의해서 개인서재를 만들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의 함께 볼 수 있도록 공공기관으로서 방대한 양의 도서를 갖춘 도서관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세계적 명문학교는 대부분 도서관에 장서된 도서의 양과 질이 우수하기 마련이다. 좋은 도서관이 없는 학교가 좋은 학교로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에 있는 이름있는 큰 신학교마다 도서관이 있다. 외국의 큰 신학교에비해서 장서의 양과 질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대개 신학교에 있는 도서관의 특징은 구약신학, 신약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선교신학 등의 여러 가지 신학 분야를 모두 모아 놓기 때문에 한 분야의 경우만 보면 그 양과 질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비해 신학교 도서관은 아니지만 신학의 한 분야 책들만 집중적으로 모아놓은 도서관이 국내에도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전문 도서관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 대한성서공회에서 운영하는 ‘성서자료실’이다. 대한성서공회의 자료실은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에 관계된 성경신학 분야에 관한 한 국내에 있는 다른 어떤 신학 대학원 보다도 훨씬 많은 장서를 비치하고 있다. 대한 성서 공회가 한국교회에 공헌한 것은 성경번역만이 아니라 바로 이 전문도서관 사역이기도 하다. 성경신학 분야에 관해서 공부를 하고싶어 하는 사람에게 이 도서관은 아주 큰 유익을 주고 있다.

 

앞으로 영국의 복음주의 도서관같은 또한 국내의 성서공회 자료실같은 이런 도서관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개혁신학이나 청교도 서적 혹은 부흥관련 서적들만을 모아놓은 개혁신학 전문도서관, 청교도 도서관, 부흥도서관 같은 것들이다. 또한 선교나 교회사에 관한 전문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선교 도서관 같은 경우에는 선교에 대한 모든 책은 옛날 것부터 최신간에 이르기 까지 모두 모아놓아 선교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고가 되어 주고, 교회사를 공부하고 싶으면 교회사 전문도서관에 가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외국의 유명한 도서관처럼 한 신학대학원의 도서관에 모든 분야의 장서가 엄청나게 다 비치되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꿈같은 세월이 오기 전이라 할지라도 각 분야의 전문도서관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각 교단의 신학대학원마다 서로 분담하여 한 분야의 전문도서관을 집중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을 어떨까 싶다.

 

2) 목회자 동역회 모임

로이드 존스는 두번째 영향을 미친 중요한 모임은 바로 목사들의 동역회 모임이다. 이 모임은 1941년에 단순한 연구모임으로 출발했다. 1943년에는 많은 목회자들이 모여 한달에 한번 특정한 화요일에 웨스트민스트 교회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모임이 되었다. 그리고 1954년에는 매달 특정한 월요일에 모여 하루종일 모임을 가지는 동역자회로 발전했다. 이 모임에 참석한 회원수는 50년대에는 평균 200명, 60년대에는 400여명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목회자 모임의 리더로서 ‘목사들의 목사’, ‘목사들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신학교 재학중에는 많은 교수님들과 동료 혹은 선후배와의 교제를 통해서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와같은 모든 교제권을 벗어나 홀로 떨어져 있게 되면 자칫 우물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자기만의 독단적 사고방식과 행동을 하기쉽다. 개별 목회지에서의 목회는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사실 목회는 전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동역의식이 필요하다. 이런 동역의식을 가지고 함께 공동으로 성장하고 공동으로 사역하기 위해 어떤 형식이든지 목회 동역자 모임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목회자 동역모임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 발전 시켜 가는 목회자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일전에 50대 중반의 한 대형교회 목사님이 약 10년여동안 6명정도가 월요일마다 모여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나누는데 그 모임이 자기가 목회를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목사들도 월요일이 되면 자고 쉽고, 쉬고 쉽고, 게을러지기 쉬운데 그 때 같은 사상과 같은 생각을 가진 목회자들이 모여서 그렇게 동역자 모임을 제대로 하게 되면 목회자의 자기 성장에 아주 유익한 것이다. 필자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아도 지난 몇 년동안 약 7명의 정도의 친구들이 일주일에 한번 혹은 2주일에 한번 모여서 정규적인 독서토론과 교제를 가지는 것이 참으로 유익하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여러 사람이 모여서 토론을 하고 공부를 해 보니까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경험과 통찰력이 몇배로 증가하게 되는 경험을 하곤한다.

모임의 구성인원은 같은 신학교 출신의 친구끼리 하던 아니면 지역적으로 초교파 모임으로 하건간에 앞으로 이런 목회자 모임이 생겨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월요일마다 점심 먹고, 저녁 먹을 때까지 4-5시간 동안에 한 1시간 30분정도는 성경본문을 공부하고, 1시간 30분정도는 좋은 책을 중심으로 독서 토론회를 하고 1시간 정도는 기도회를 가지는 모임을 통해서 모든 목회자가 재충전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주일에 한번이건, 한 달에 한번이건 동역자 모임을 통해서 늘 연료를 공급하면서 우리의 목회에 대한 비젼에 열정이 식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로이드 존스가 바로 영국에서 소장 목사들과 젊은 신학생들에게 이런 목회 동역자 모임을 통해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다.

 

3) 국제 복음주의 학생 운동(IFES)

로이드 존스가 처음 학생운동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1935년 IVF(Inter Varsity Fellowship, 현재는 UCCF)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이 단체는 1927년 여러 대학교와 의과대학의 기독 학생 단체를 연합시키기 위하여 여러교파의 그리스도인에 의해 결성되었다. 로이드 존스가 이 단체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처음 이 단체의 총무였던 더글라스 존슨에 의해서 연례 수련회 강사로 초빙된 것 때문이었다. 로이드 존스의 설교는 IVF에 큰 충격을 주었고 1939년에는 IVF의 총재로 선출되기도 했다. 이 당시 참된 복음주의 대학생들은 소수였고 다수의 극단적 자유주의 학생운동 단체들에 의해서 위협을 받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복음주의 대학생들은 위축되었고 복음주의적인 교리적 기초가 아주 허약한 상태에 잇엇다.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IVF에 성경에 대한 건전한 교리적 기초를 세워주며, 성경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독교 신앙과 자신들이 공부하는 주제들의 관계성을 말해줌으로써 신앙과 학문의 관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도 했다.

 

또한 로이드 존스는 1939년 IVF의 총재직을 맡았던 것을 계기로 국제복음주의 학생운동(IFES, International Fellowship of Evangelical Students)의 설립과 방향설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이 학생단체는 지금 CCC나 Navigator와 같은 학생선교단체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적 학생선교단체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단체는 처음 2차 세계대전의 기운이 점점 고조되어 가던 1939년 33개국으로부터 800여명의 학생들과 지도자들이 모인 캠브릿지 국제회의로부터 시작되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1947년 8월 미국의 보스턴 외곽에 있는 하바드 대학에서 국제복음주의 학생단체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이 IFES의 설립초기 이 단체의 교리적 기초를 놓는데 가장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로이드 존스는 IFES로부터 신조와 사역의 개략적 기초와 구상을 위임받아 자신의 뛰어난 논리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이 일을 아주 훌륭하게 해 냈다. 로이드 존스는 IFES의 목적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했다. 첫째, 여러 나라의 복음주의적 단체들 간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고, 둘째, 복음주의적인 기독교 단체가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약한 상태에 있는 나라에서의 선교적 전도 활동을 전개하게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당시로서는 아주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IFES의 사역은 각국의 복음주의적 단체를 결성하고 돕는 일이다. 각 단체들이 일단 결성되면 전적인 자율권이 주어지며 IFES는 이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각 단체가 새로운 활동을 시작함에 있어 도움이나 협력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특별히 요청하는 경우에는 IFES가 그 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 이와같이 선언문이 혁명적이었던 이유는 당시만 하더라도 모든 국제기구의 주도권은 서구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FES는 처음부터 각국의 기독교 운동을 그 나라의 지도자가 책임질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IFES가 주로 제 3세계 출신의 지도자들에 의해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로이드 존스는 47-59년까지 의장을 지냈다. 그리고 59-67년까지는 총재로서, 그 이후 죽을 때까지 부총재로서 국제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기초형성과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로이드 존스가 IFES에 미친 영향을 초대 25년동안 총무로 봉사했던 스테이시 우즈는 이렇게 말했다.

“IFES의 역사를 이야기 하자면 초대의장을 지낸 마틴 로이드 존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확고한 성경적 기초를 놓는데 큰 역할을 해 주었다. 막 성장하기 시작한 학생운동에 있어서 그의 영향력과 지도력은 사뭇 큰 것이었다. 바쁜 생활 중에도 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과 함께 총무에게 조언을 해주고 도와 주는 일을 위해서는 항상 시간을 내주었다. 그는 매년 열린 실행위원회를 위해 2-3일은 아낌없이 바쳤으며, 3-4년마다 학생 대표들과 함께 하여 여는 전체 회의 때에는 더 오랜 기간을 투자했다”

 

 

4) 청교도 대회

로이드 존스는 1950년대에 영국에 새로운 청교도 르네쌍스가 일어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로이드 존스의 주도록 해마다 열리는 청교도 대회를 통해 청교도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형성되었다. 2000년 교회역사가운데 가장 깊이 있게 성경을 연구했던 한 시대가 바로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까지의 영국의 청교도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16세기 종교개혁기에는 루터, 쯔빙글리, 칼빈 등의 걸출한 종교 개혁자들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목회에 더 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다음시대의 영국에서 활동했던 청교도들이다. 종교개혁의 완성자라 할 수 있는 칼빈만 하더라도 그의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특징처럼 간결하고, 명쾌하다. 칼빈은 전 신학의 분야를 목차처럼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아주 넓고 방대한 분야를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어서 좋지만 그 한 부분을 깊이 있게 밀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루터와 칼빈등의 개혁자들이 다루었던 주제들을 아주 깊이 있게 연구해 들어갔다. 청교도들은 한 권의 성경책을 수십년씩 강해설교하기도 하고, 하나의 주제를 수백페이지 분량으로 설교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에배소서6장 10절-18절까지 영적인 전투부분에 대해서 수백 페이지로 세 권씩이나 설명하기도 하고, 로마서 강해를 할 때에 한 절을 가지고 거의 6개월 동안 설교를 할 정도로 깊이 있게 설교를 했기 때문에 훨씬 더 유익을 많이 주고 있다. 그래서 아더핑크라고 하는 20세기의 유명했던 성경연구가와 설교가가 자기 후배에게 책을 읽을 때 ‘어떤 책을 읽으면 좋으냐?’그렇게 편지로 조언할 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존오웬, 토마스 맨톤, 토마스 굳윈, 이 사람은 루터와 칼빈보다 두 배나 더 유익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읽어라’. 루터와 칼빈은 대다수의 목회자들이 친숙하게 들어본 이름이지만 존 오웬, 토마스 굳윈, 토마스 맨톤등의 이름은 아주 생소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17세기 영국 청교도 목사들이었다. 그런데 아더 핑크가 이들 17세기의 청교도들이 16세기 대표적 종교개혁자들보다 왜 더욱 중요하다고 추천하는 것인가? 의아한 생각을 가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청교도들의 저서들이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면에 있어서 개혁자들보다 훨씬 더 상세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청교도들 가운데 중요한 작품을 남긴 작가들이 약 100여명이 넘는다. 이들은 모두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신학교수 정도의 신학적인 학문적 바탕에다가 선교사 이상의 뜨거운 열정을 함께 소유한 목회자들이었다. 이들에 의해서 수많은 성경 연구들과 설교와 강해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그 청교도들이 참으로 우리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18세기, 19세기, 20세기 중반까지 청교도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말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들은 아주 고대의 사람으로만 우리와는 아주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버렸다. 교회안에 들어온 자유주의의 물결과 영적 침체가 그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영국에 다시 개혁주의 신학과 청교도 신학 연구의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로이드 존스였고, 또한 로이드 존스가 중심이 되어 모였던 청교도 연구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처음 1950년에 옥스퍼드의 젊은 대학생들과 이들의 대표자격인 제임스 패커와 같은 젊은이들과 로이드 존스가 결합이 되어서 만들어졌다. 청교도 대회의 모임 방식은 해마다 크리스마스전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을 모여서 하루 온종일 모임을 했다. 대개의 경우에 한 2시간 강의를 하고 나면 또 1시간 정도 토론을 하고 이런 방식으로 하루의 세 강좌와 세번의 토론, 전체적으로 6번의 강의와 6번의 토론이 있었다. 이때 이틀의 6번의 강의 가운데 마지막날 마지막 강의는 늘 로이드 존스가 고정적으로 강의를 했다. 로이드 존스의 이러한 강의들은 「청교도 신앙」이란 책으로 묶여서 발간되었다. 이러한 청교도 대회는 1969년부터는 웨스트민스트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청교도 연구모임을 통해 영국 교회의 젊은 목회자들 사이에 개혁신학과 청교도 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연구하게되는 풍토가 조성되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청교도들의 재발견은 이러한 로이드 존스의 영향이 아주 컸다.

 

5) 진리의 깃발사

영국 교회에 개혁과 부흥신학 그리고 청교도 신학의 연구에 큰 공헌을 한 단체로서는 ‘배너오브트루스(진리의 깃발사)’라는 출판사가 있다. 청교도 연구회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개혁신학과 청교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개혁자들과 청교도 저자들의 원전들은 이미 절판된 상태이며, 더 이상 발간이 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관련분야의 책을 볼 수 없었다. 이때 진리의 깃발사에서 이러한 원전들을 복간해 내기 시작했다. 수많은 청교도 원전들을 복간해 냄으로 많은 사람들이 청교도 저서들을 손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청교도 연구의 기폭제가 되었다. 진리의 깃발사는 이러한 청교도 연구를 하려고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젖줄과 마찬가지였다.

 

이 출판사는 로이드 존스가 직접 설립한 것은 아니지만 이 출판사의 설립과 성장에 로이드 존스는 직, 간접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진리의 깃발사가 설립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 먼저 잭 쿨럼이라고 하는 사업가가 있었다. 회사를 2개나 가질 정도로 아주 훌륭한 사업가였는데, 원래 이 사람은 감리교 신자로서 아주 형식적인 신자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권유로 로이드 존스가 목회하던 웨스트 민스터 교회에 출석을 하던 중, 어느 날 이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갔다가 거기에서 회심을 경험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막 회심을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잭 쿨럼의 신앙도 신선하게 불이 붙었다. 이 무렵 이안 머레이라는 다른 한사람이 로이드 존스의 웨스트민스트 교회에 부목사로 오게되었다. 이안 머레이는 영국 북부지방에 있었던 더람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로이드 존스 영향과는 전혀 상관없이 청교도 책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얀 머레이는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진리의 깃발’이라는 20페이지짜리 잡지를 창간했다. 이안 머레이는 잡지의 비용마련을 위해서 런던에 왔다가 로이드 존스를 만나아주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고, 경비의 일부분도 후원을 얻게되었다. 후에 로이드 존스는 이얀 머레이를 자기의 교회로 불러 들였다. 웨스트 민스터 교회의 부목사가 아니라 개인 부목사로서 일하게했다. 왜냐하면 이얀 머래이가 대단히 지적인 능력이 뛰어나고 글쓰는 솜씨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개혁신학에 관한 책들을 많이 발간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구할 시간을 많이 확보해 주기 위해서 였다. 그래서 이얀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와 함께 연구 생활에 몰두하면서 개혁신학자들 그리고 청교도 원전들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로이드 존스는 이얀 머레이에게 ‘두 번의 성경 공부 모임을 주중에 인도해 달라 그런데 그 중에 한번은 성경을 가리키지 말고 교회사 강의를 해 달라’는 주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얀 머레이는 웨스트민스트 교회에서 부목사로서 일주일에 두 번의 모임을 인도하게 되었다. 잭 쿨럼은 이안 머레이가 교회사 강의도중에 소개해 주는 청교도들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인데 왜 요즘 사람들이 그 사람들 책을 읽지 않습니까?”라고 이안 머레이에게 물었다. “지금 그 사람들의 책을 읽고 싶어도 서점에 가면 그런 책들이 없기 때문에 읽지 못합니다.”라고 이얀 머레이가 말하자 잭 쿨럼은 자신의 재산을 이러한 책들을 발간하는데 사용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20대 초반의 이얀 머레이와 성공한 사업가인 잭쿨럼이 만나서 잭쿨럼은 돈을 대고, 이얀 머레이는 책을 선택하고 이 중간 다리 역할을 로이드 존스가 했다. 이렇게 해서 1957년 진리의 깃발사라고 하는 출판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진리의 깃발사는 출판사 설립 첫해에 약 11권의 책들을 발간하게 되었고, 책들은 발간되자 마자 많은 독자층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수많은 청교도 원전의 복간으로 인해서 청교도 연구 역사의 새 장을 열게되었다.

 

현재 국내에도 약 10여년 전부터 청교도 저작들에 대한 소개가 여러 출판사들을 통해서 간헐적으로 나오고 있다. 생명의 말씀사나 기독교 문서 선교회 같은 비교적 규모있는 출판사를 통해서 몇권이 나왔지만 전체 출판의 방향이 백화점식의 종합출판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출판사에서 나온 청교도 책들은 전체에 뭍혀서 별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부흥과 개혁사나 지평서원 또는 청교도 신앙사와 같은 작은 출판사들은 비교적 청교도 저서들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려고 하고 있으나 그 규모의 영세성으로 인해서 아직 체계적인 청교도 서적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청교도들이 남긴 저서의 방대함은 실로 광산에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 소개된 청교도들의 저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앞으로 청교도 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할 수 있는 영국의 ‘진리의 짓발사’와 같은 출판사가 등장해서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청교도 서적들을 한국교회에 소개해 줄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신앙성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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