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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과 모세]-3-; 스톡데일 패러독스 2011/9/1 21:21
http://mylog.jesusfamily.kr/ksbong73/3045 
 

주후 408년 9월, 고트족의 왕 알라리크는 오스티아 항구를 점령하고 로마 도시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도시마저 포위되자 아사자와 병사자가 늘어났습니다. 그로부터 2년쯤 뒤 코트족 군대는 성문을 부수고 도시 안으로 진입하였다, 야만족의 발에 로마 도성은 파괴 되었습니다. 당시 교부 제롬은 에스겔서 주석을 집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로마가 망한다면 무엇이 안전하겠는가?󰡓제롬의 탄식이 말해주듯이 당시 로마 제국의 멸망은 라틴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기독교 국가가 이교도 민족에게 무참히 짓밟힌 재앙이었다. 이 대재앙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님의 도성』을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책을 통하여 로마가 이교도의 손에 의해서 파괴된 원인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 책임이 절대로 기독교도들에게 있지 않음을 변증하였다. 그 책임은 신의 뜻을 어긴 로마 시민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신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었다. 하나님의 계시는 보편적 역사의 흥망성쇠를 이해하는 열쇠다. 계시의 눈을 역사를 볼 때, 지난날의 역사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의미를 갖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의 역사를 죄와 은혜의 역사로 환원한다.

『하나님의 도성』을 집필 계기가 친구이자 로마 제국의 행정담당관이었던 마르켈리누스였다면, 「에스겔」서 집필 계기는 하나님이시다. 약 천 년이 넘는 시공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 두 책의 출발점은 모두 계시이다. 에티엔느 질송은 말하기를, 󰡒이 계시는 우리의 단편적인 경험론이 도달할 수 없는 보편성을 역사에 제공하고 무엇보다 역사의 기원과 종말을 밝혀줌으로써 역사의 신학을 가능하게 하고 시간의 질서 속에 있는 우주에게 지성성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이 계시는 비단 세계사뿐 아니라 한국사는 물론 개인사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마크 데버 목사도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것은 자신의 말씀 속에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했다. 그 계시는 강력하고 온전한 자신을 나타내시는 계시다.

 

만약 당신이 전쟁 포로라고 상상해 보라. 포로 수용소에는 당신과 같은 포로들이 많이 수감되어 있다.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포로들은 말할 수 없이 야위어 가고 죽어 간다. 왜 그럴까. 실제로 베트남 전 당시 8년 간 포로였던 스톡데일 장군의 경험담은 유명하다. 그는 언젠가는 풀려날 것과 그 생활이 훗날에 가치 있는 경험일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성탄절에는 풀려나겠거니, 부활절에는, 추수감사절에는 풀려나가겠거니󰡑근거 없는 진실 이상의 낙관을 갖고 지내다가 상실감에 결국 죽어갔다. 이를 일컬어, 짐 콜린스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고 하였다.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보여주듯, 우리는 매사를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두어 해석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를 두고 헤르만 도예베르트가 󰡒우리가 실재의 역사적 국면을 그 안에서 작용하고, 하나님이 그의 피조 질서의 실재에 부여한 다른 모든 국면들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건들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은 절대 필요하다.󰡓말한 점은 옳다. 다만 우리가 기억할 것은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있음을 믿는 일이다. 만사를 움직이시고 그 권능의 팔에서 벗어난 상황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고트족에 포위된 로마 시민들이나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알았을 리가 없다. 다만 그런 개념은 몰랐을지라도 심신의 절박한 동의는 이미 오래 전에 경험하였다. 그리고 전혀 다른 시대, 그러나 비슷한 상황에 몰린 로마 기독교인들과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처방은 동일하다. 󰡒나를 알라.󰡓이다. 그보다 이집트의 핍박 속에 여위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하셨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심을 모세에게 나타내신 것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당신을 나타내신 목적도 동일하다. 마크 데버 목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랑을 버리고 도망간 신부를 다시 신랑에게로 인도하는 일이다.

 

에스겔서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 다시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반복적으로 󰡒너희가 내가 여호와인줄 알 수 있도록󰡓이 예언을 제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서에서 시행된 모든 심판과 약속된 모든 소망은 이러한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에스겔에게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로 가득 차 있는 성전을 떠나십니다. 그러나 다시 오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알도록 제공됩니다.

 

우리는 욥기 중국에 가서는 고통 받기 전의 갑절의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욥이 겪었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게다가 그의 친구들이 와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욥의 잘못을 추궁한다. 계속 이어지던 원고와 피고 간의 분쟁을 잠재운 계기는 하나님의 개입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욥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다만 인간들은 측량하지 못 할 지혜와 능력들의 근원을 물으신다. 욥기가 어느 한 개인의 인생사라면 선지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사다. 이 개인이나 민족의 고난의 역사에 공통적으로 담긴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처럼 세상이 덧없게 보일 때, 영원할 줄만 알았던 일들이 망가지고 삐걱거릴 때, 바로 이때야말로 하나님께서 자비로 영원한 것을 다시 주목하도록 이끄는 시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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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과 모세]-2-; 서부전선 이상없다 2011/9/1 21:18
http://mylog.jesusfamily.kr/ksbong73/3044 
 

E. 레마르크의 대표작『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제1차 세계대전 때 학교 선생의 선동에 의해 전선에 배치된 청년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와 친구들은 전선(戰線) 곳곳을 오가며 전투에 참전한다. 그 과정에서 적군을 죽이기도 하고 독일군 전우들이 전사한다.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한 친구들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들이 살아 귀향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결국에 작품의 마지막에서는 끝까지 살아남을 줄로 알았던 주인공도 전사한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학업 마치고 대학을 졸업 후 저마다의 꿈을 이룰 청년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비극을 작가는 과장 없이 진솔하게 소설 속에 그려 냈다.

에스겔의 삶은 어떨까. 그도 착실하게 제사상 수업을 받은 청년이었다. 비록 파울 보이머보다도 열 살 이상은 많지만 곧 제사장 직을 수행할 사람이었다. 전선에 있는 파울과 달리 에스겔은 그발 강가라는 포로촌에 있다. 그는 주전 597년 예루살렘의 왕족 및 다른 지도층 시민과 함께 바벨론에 붙잡혀 이곳에 온 것으로 보인다. 바벨론 군인들은 수차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에스겔은 초기에 잡혀간 포로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파울 보이스와 푸른 동료 전우들의 아까운 죽음은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망 때문이라면 에스겔의 포로 생활은 누구 때문일까. 예언을 무시한 시드기야 왕의 실정 때문일까. 에스겔도 익히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말씀. 이스라엘은 들었어야 했다. 당시 평강을 외치는 거짓 선자들의 외침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의 심판을 정하셨다(렘 19:11). 시드기야 왕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 국가의 지원이라는 다른 길을 택했으나 바벨론은 훨씬 강했다. 결국 예언은 이루어 졌다.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은 무너졌다. 왕자들이 왕 앞에서 처형되었다. 왕 자신도 삼손처럼 눈이 뽑혔다.

율법에 정한대로 착실히 제사장 수업을 받은 청년이 겪었을 현실의 벽이 신학을 공부했으나 사역지를 찾지 못하는 신학생에 비유할까. 성전은 부서졌고 약속의 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다. 더 이상 성전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길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신학교나 교회의 파괴, 조선시대 귀양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은 약속과 함께 사라졌다. 이안 두굿의 말대로, 이런 격변의 세월이 에스겔서에 있는 예언들의 배경을 형성한다. 에스겔서의 배경은 예루살렘 멸망을 전후로 하여 2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있다. 그런 광경을 목도한 에스겔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독자는 예언에 몰입할 수가 없다.

이처럼 고통이 연이어 올 때 드는 스멀스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과연 하나님은 계실까.󰡑필자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십 대 후반에 고통이 연이어 왔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전세로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 쫓겨날 판이었다. 나는 출혈성 위궤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여동생은 턱을 깎아 붙이는 대수술을 하였다. 그 때 절로 드는 생각이 󰡐하나님은 이런 나를 지켜보고 계실까.󰡑,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가.󰡑였다. 만약 존재하신다면 하나님은 사디스트요. 방관자 일거라 생각했다. 비록 수십 년간 제사장 수업을 착실히 받았던 청년 에스겔이었을지라도 한 번도 그와 같은 생각을 안 해 봤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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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me introduce myself 2011/8/18 3:6
http://mylog.jesusfamily.kr/ksbong73/3036 
 

안녕 여러분! 내 이름은 에스겔이야. 나이는 서른 살이지. 성전에서 일 해. 이스라엘 제사장 가문에 태어났거든(민 4:3). 하지만 나라는 바벨론에 망해서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고 난 이처럼 포로로 살고 있어. 참으로 소망 없는 삶이지. 그래서 그런가. 요즘 들리는 한국 청년들의 소식을 들으니 공감이 가더라. 높은 대학 등록금과 낮은 취업률. 88만원 세대니. 고시 열풍 같은 말이 남의 일 같지 않아. 그래도 너희들은 나보다 나아. 나처럼 일자리는 물론, 나라까지 빼앗기지는 않았잖아. 그러니 나를 보고 기운을 내. 그보단 내가 만난 하나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을 갖기를 바래.

 

미국의 어느 통계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읽지 않는지 잘 보여 주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읽는다 하여도 주로 신약 성경을 읽지 구약 성경을 좀처럼 읽지 않는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구약은 죽은 말씀이라는 오해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힘들 때 도움을 얻는 구약성경책이 있는가. 시편, 이사야, 애가. 그렇다 하여도 에스겔서는 드물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까. 에스겔서는 왠지 범접하기 힘든 기운을를 풍기고 있다. 교부 제롬(Jerome)조차 에스겔서의 난해함을 피력한 바 있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그리고 다니엘서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이 네 책 가운데 세 번째 책인 에스겔서의 처음과 끝은 너무 모호하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은 창세기의 처음 부분과 마찬가지로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는 이 책을 가르치지 않는다.

 

필자도 에스겔서와 친숙해진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에스겔서에 흥미를 갖고 다가간 계기는 이안 두굿 교수의 주석서를 읽고 나서다. 역시 󰡐알면 사랑하게 된다.󰡑

 

나는 긍정의 복음, 긍정의 심리학, 믿으면 된다는 식의 가르침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긍정의 믿음을 경험한 것보다는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더욱 많이 해서 그런가 보다. 특히 1997년 겨울,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그 날 밤길을 잊지 못한다. 밤하늘의 별빛을 보고 감동해서가 아니다. 빛공해로 가득 찬 여의도 한복판에서 밤하늘의 별빛을 보기란 어렵다. 장동건, 김태희를 봐서는 더욱 아니다. 설령 그 날 내 앞에 그들이 나타났어도 그 날만큼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날은 내가 IMF에 접어든 시기에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나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한국방송공사 신관을 지나 대방역 지하차도, 노량진 수산시장, 동작구청, 장승백이, 집까지 걸어오는 퇴근이 실직의 시작인 낙오자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내가 군에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해서 한창 열심히 신앙생활에 열심히 있던 시기였다. 모든 열정과 시간을 들여 헌신하였기에 그 때의 경험은 이내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향했다. 󰡐내가 당신 위해 수고가 얼만데 내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한 달이 지날 때쯤 내가 깨달은 건 󰡐신자에게도 고난은 있다.󰡑였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고난은 있었다. 사막을 지날 때 목마름, 무거운 등짐 못지않게 힘들게 하는 건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작음 모레 알갱이들 아닌가. 큰 고난이든 작은 고난이든 고난은 고난이란 말이다.

 

긍정의 심리학, 부와 건강의 복음은 때론 나를 초라하게 한다. 이 두 가지 확신으로 무장하고 사회에 뛰어들어 직장과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 그래서 일가를 이루고 명성을 높인 인물이 되어 강연과 간증 집회에 나가는 믿음의 본이 되기를 소망하지만 세상은 때론 그리 녹록하지 못하다. 오늘 상사에게 무참히 깨질 수 있고 나처럼 회사에서 잘릴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신자에게 󰡐믿으면 된다는 식의 복음󰡑으로는 결코 그들을 세워 줄 수 없다. 그것은 야고보 사도가 말한 입으로만 하는 행함 없는 믿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 복음은 나와 현실, 나와 복음의 괴리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복음도 그런 복음이 아니다. 무한과 영원한 영광의 시간과 공간의 막을 뜯고 제한된 육체와 시간에 구애 받는 고통과 불편함을 감수하시기까지 찾아오신 분이시다. 그런 현실 참여적 성격의 하나님에게서 그와 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복음이 나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도 저개발 국가들에게 어떻게 대한민국이 짧은 시간에 근대화와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이루었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선교사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내 삶에 상전벽해의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교회의 문지방을 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교회들이 이런 풍조를 조장한다.

이런 가운데 내가 선지자는 아니지만 나는 미래에 나타날 모습을 그려 본다. 긍정의 심리학을 가르치는 조엘 오스틴의 교회가 언젠가 텅 빈 의자로 넘쳐날 그 날을. 그렇지 않고 조엘 오스틴의 교회가 대한민국 교회에 많아지면 우리는 더욱더 에스겔의 말에 등을 돌릴 것이다. 삼십 년 동안 제사장으로 살아갈 준비를 한 젊은 청년이 난민으로 포로로 소망 없는 적국의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고통의 삶을 우리는 들을 수 없게 된다. 왜 하나님은 왜 전도유망한 제사장 청년의 그 고생담을 성경에 넣으셔서 우리를 껄끄럽게 하시는지 원망만 늘어간다.

 

우리는 광장이나 지하철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팻말이나 어깨띠를 두른 전도자들을 본다. 때로는 󰡒하나님은 당신에게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로 시작하는 조그만 󰡐4영리󰡑책자를 들고 전도하는 청년들을 본다. 나 또한 초신자 시절에는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이 깨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IMF는 필요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처방하신 천로역정으로의 초대였다. 그래서 난 생각한다. 4영리로 교회로 이끌고 긍정의 심리학만을 외치면 어느 날 노방 전도에서 이런 경우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어, 저 기억 못하세요? 왜 예전에 지금 그 책자로 전도하셨잖아요.󰡓

󰡒아. 네. 그랬군요. 지금도 잘 나가시고 계시죠?󰡓

󰡒아뇨. 지금은 교회 안 나가요.󰡓

󰡒아니 왜요?󰡓

󰡒아니 교회에 가도 다를 게 있어야죠. 󰡐믿으면 잘 된다.󰡑󰡐이렇게 하면 성공한다󰡑하는 것들 서점에 가면 자기계발서 코너에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편히 쉬어야 할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같은 소리를 또 듣나 싶었죠. 왠지 시간 죽이는 것 같고. 그럴 바엔 뭔가 특별한 걸 찾아봐야겠다 싶어서 이번 휴가 때 봉은사로 템플 스테이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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